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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황옥 신행길의 새로운 고찰(1)
    • 도명 스님
    • 승인 2020.07.1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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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명 스님(김해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 소장)
    허왕후 도래 경로 지도.
    허왕후 도래 경로 지도.

    1. 시작하는 말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인연과 뿌리라는 근원이 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자기존재의 근원인 조상이라는 뿌리를 소중히 해왔다. 그래서 일찍부터 효(孝), 예(禮)는 우리민족 정서의 소중한 흐름으로 자리 잡아왔다.

    흔히 어떤 성씨를 최초로 만들거나 받거나 하여 그 씨족의 처음이 된 사람을 시조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 중 가장 많은 성씨가 김해김씨 인데 그 시조가 수로왕과 허왕후 이며, 그 연원이 되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수로왕은 천손강림 신화의 주인공으로 알에서 태어났고, 그의 비가 되는 왕후 허황옥은 자기가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고대 신화시대나 역사시대의 초기에서는 수로왕과 같은 왕이나 영웅들을 일반인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어떤 사실의 기반위에 어느 정도의 상징조작과 부풀리기는 동서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가락국기`에서 허왕후는 자신의 출신지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으며, 아울러 단순히 신화화 할 수 없는 사실적인 정황들이 여러 곳에 보여진다.

    조상을 숭배하고 효와 예를 소중히 하는 우리 민족적 정서에서 보자면, `삼국유사` 전체나 김수로왕의 존재와 허왕후의 도래를 아주 황당무계한 신화로 치부해 버리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현재 김해김씨와 허씨 성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뿌리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현재 우리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그 분들이 겪은 역사와 경험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실정이듯이, 고대 역사는 오래된 과거의 기록이라서 과거를 살아보지 않은 우리들이 현재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기록을 섣불리 평가하여 재단하거나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역사를 이해하기에 앞서 역사서 내지 사료를 엄정하게 분석하고 비판과 비평을 거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지라도 현재의 관점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삼국유사`에 기술된 그대로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가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역사 탐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서라는 1차 사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뼈와 골수가 되는 1차 사료에 바탕을 둔 다양한 선행 연구들을 통해 살과 가죽이 입혀지면서 역사적 사실에 근접하게 되고 생동감을 불어넣게 된다.

    그러나 권위자의 선행연구 성과물은 후학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또 주어진 값이라는 굴레가 되어 후학들의 길을 막거나 헤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본고 "허왕후 도래 경로에 대한 고찰"은 가급적으로 `삼국유사` `가락국기` 원문 내용에 입각하여 경로, 지명, 거리, 방향 등을 서술할 것이어서 기존의 선행연구 성과와 다른 과정과 결과가 나올 수 있겠지만 원문내용에 맞춰보면 특별히 새로운 것이라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 성과와 다른 부분은 문제제기와 동시에 연구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으며 서술에 임하는 바이다.  

    웅천현지도.
    웅천현지도.

    <요약문>

    한국의 고대사에 나오는 고구려ㆍ신라ㆍ백제는 `삼국사기` 본기에 자세히 실려 있으나, 같은 시기에 김해지역을 도읍지로 삼은 6가야 중의 하나인 가락국은 서기 42년부터 532년까지 490년간 수로왕에서 비롯되어 그 자손에 의해 왕국을 이어 왔지만 `삼국사기` 본기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삼국사기` 地理부 金海小京조와 신라본기 婆娑尼師今조와 法興王조 그리고 열전 金庾信조에 단편적으로 나올 뿐이다.

    물론 이 외에도 가야국에 관한 약간의 기사가 신라본기에 나오지만 가락국에 관한 정보가 빈약한 실정이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에는 엄연하게 후한 건무18년(서기 42년)에 수로왕이 나라를 세웠으며, 그의 후손 구해왕이 법흥왕 19년( 서기 532년)에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 권제 2 奇異편의 `가락국기`에는 수로왕과 가락국에 관한 기사가 `삼국사기` 보다는 매우 풍부하게 실려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써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서기 48년에 가락국 수로왕과 혼인하기 위해 먼 바다를 항해하여 가락국에 도착하는 과정에 있는 망산도(望山島), 승점(乘岾), 주포(主浦), 기출변(旗出邊), 능현(綾峴). 왕후사(王后寺) 등의 명칭이 `가락국기`에 최초로 나오는데, 이와 상치(相馳)되는 다른 문헌이 없지만 오랜 세월에 그 지명의 장소가 오늘날에는 어디를 지칭하는지 잘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보니 연구자들 마다 추정하는 장소가 다를 뿐 아니라 `가락국기`의 기사와 너무나 동떨어진 경우도 있어서 가야사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혼선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김해에 거주하고 있는 본 연구자의 입장에서 한번쯤 再考할 필요를 느꼈기에 선행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들을 참고하면서 `가락국기`의 내용과 상관관계가 있는 현장을 아울러서 고찰해 본 결과, 망산도는 오늘날 국립지리원에서 제작한 지도에서 가덕도와 진해구 용원동 사이에 있는 섬인 견마도(牽馬島)를 표시한 곳이 망산도이다, 그리고 주포는 창원시 진해구 가주동의 주포마을이다.

    겸하여 `김해명월사 사적비`에 나오는 진국사(鎭國寺)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현재의 부산시 강서구 지사동 명동마을의 흥국사(興國寺) 주변이 아니라, 주포와 연접한 옥포마을 뒷산인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 산20번지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 외 기출변과 승점과 능현과 왕후사지는 기존의 학설과 달리 문제제기 차원에서 언급하는 바이다. 

    김해 항공사진.
    김해 항공사진.
    김해 지형도.
    김해 지형도.
    고해면기.
    고해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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