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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문화진흥학술대회 주최 가야사의 선봉자 도명스님 대담
    • 영남미디어공동취재단 신동호 기자
    • 승인 2024.05.10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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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문화진흥학술대회 주최 가야사의 선봉자 도명스님 대담

    허왕후 도래길, 파사석탑과 역사 왜곡에 대한 연구
    “가야사 신화가 아닌 역사로 바로 세워야”

    김해시사(史) ‘임나’가 삭제되지 않은 상태로 6월 발간 예정
    “20여억 원 들여 나라 팔아먹는 행위”

    가야사와 가야불교사 연구를 통해 가야문화를 바로 세우고 복원하기 위한 제9회 가야문화진흥학술대회가 지난달 27일 국립김해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사)가야문화진흥원(이사장 도명스님) 주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는 박재섭 인제대 명예교수, 붓다빠라 스님, 고영섭 동국대 교수, 이철현 동국대 교수, 김영회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향가만엽집 연구실장, 양지선 경상국립대 교수, 이화선 선문대 연구교수, 사찰 및 학술단체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은 인사말에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나오는 기록은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되찾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라며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와 지역사회, 기존 사학계가 함께 가야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립하고 가야불교사를 신화가 아닌 역사로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이 ‘스진(崇神)천황은 가야씨족이다 가야인의 지역 분포도’를 기조발제 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고영섭 동국대 교수가 ‘가야 표기법과 만엽집, 고사기, 일본서기 속 향가와의 관계’를, 붓다빠라 스님이 ‘가야에 전해진 불교의 성격’을, 이화선 선문대 연구교수가 ‘가야의 술, 난액혜서 연구’를 발표했다.

    여여정사 주지이며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인 도명스님은 다양한 관점의 역사서를 독파하고 현장을 누비며 허황옥 도래의 역사적 증거를 수집하는 데 10여 년 동안 매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스님은 가야사가 상당 부분 왜곡된 상태임을 확인했으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첫 단추가 바로 허황옥의 도래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이라고 역설했다.

    [도명스님과의 일문일답]

    - 2014년 사찰을 세우려 하실 때 가야대 서용규 총장의 권유에 따라 ‘가야정사’로 작명하면서 가야불교와 가야사 연구가 운명이 되었다고 하셨다.

    여여정사 주지 소임을 맡은 뒤, ‘여여(如如)’에 대한 질문을 곧잘 받았다. 서용규 총장님의 권유에 적극 동의하면서 ‘가야정사’라고 지으면 가야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았다. 가야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어 자료를 찾아보던 중 가야불교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는데, 가야불교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커다란 덩치의 화두였다.

    일부 사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서기 452년 제8대 질지왕이 세운 왕후사 창건이 가야불교의 전래라고 본다면 김해 주변의 여러 가야불교 연계 사찰들은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럴 때쯤 가야불교를 연구하시는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 장재진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역사는 문헌과 고고학도 중요하지만, 민담·신화·전설·족보 등 다양한 출처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이어 “가야불교의 기록, 사찰, 파사석탑 등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시면서 장교수님이 준비해 왔던 학술대회 개최를 3년 정도만 주최해 달라는 권유가 있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듯 그렇게 한 번 부딪쳐 보기로 한 것이 운명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고대 가야는 200여 년간 고대 야마토 왜의 식민지였다는 ‘임나일본부설’이 대두되면서 제기된 ‘삼국사기’삼국유사 초기기록 불신론'에 휩쓸려 가야 초기의 기록들과 함께 수로왕과 허왕후도 신화화되며 부정 당하게 됐다. 일본 관제 사학자들의 역사 왜곡의 영향은 해방 이후에도 우리 사학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한일 고대사 부분 중 가야 건국을 비롯한 가야 초기에 대한 시각은‘강단사학’과 ‘민족사학’이 서로 확연하게 달리하고 있다.

    일제의 관제 사학자도 아닌 우리나라 학자들이 우리 뿌리인 선대의 조상을 근거 없는 상상과 추정으로 부정하고 우리의 선영들이 남긴 소중한 기록과 유적이 신중한 고찰 없이 폄하 당하는 현재의 상황이 심히 우려스럽다.

    - 당시 가야사 전문 주류사학자라고 하는 인제대 모 교수도 허황옥의 도래와 파사석탑의 신뢰가 어렵다고 했다.

    20세기 초반 당대의 일본 최고역사학자 중 한 사람인 ‘쓰보이 구메조’라는 동경대 교수가 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우리말로 삼국유사를 해석하기 전에 먼저 일본어로 삼국유사를 해석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삼국유사 파사석탑조의 판본을 석문할 때 말(末)자를 미(未)자로 바꾸어버렸다. 연우시해동말(然于時海東末) 유창사봉법지사(有創寺奉法之事)라는 문장을 연우시해동 끊어 버리고 말자를 미자로 바꿈으로써 180도 반대되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를 근거로 일연스님도 불법이 오지 않았다고 하지 않느냐 고 주장하는데 이상하지 않느냐. 일연스님이 불법이 오지 않았다고 하면 안 쓰시면 되는데 분명히 저렇게 써 놓으셨다. 이렇게 의심의 시각으로 연구를 하다가 삼국유사 규장각본(국보)과 고려대학교 소장본(보물)을 확인해 보니 모두 말자가 분명했다.

    가야불교도 인정하지 않던 김해시사(史)편찬위원회에서도 ‘미자를 왜 말자로 임의해석하느냐’는 이의를 제기해 와서 캡처한 규장각본과 고려대 소장본을 보내 줬더니 더 이상 대답이 없더라. 가야사 전공자들도 파사석탑의 원문 조차 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일본 사람들이 해석해 놓은 것을 그대로 전달하고, 일본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어떻게 변조했는지를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중국사서나 원서를 보면 낙랑은 재(在) 요동, 낙랑은 요동에 있다고 기록하고 낙랑 관리나 낙랑인이 북경 윗 쪽이나 발해만 쪽에 거주 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 역사는 한사군이 한반도에 위치한다고 쓴다. 이것을 우리는 반도사관이라 하듯이 가야사 왜곡을 식민사관이라 한다.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판본이 존재하지만, 일본서기는 판본 자체가 없다. ‘시라토리 구라키치’라는 조선사편수회를 만든 사람이 19세기 후반에 마지막으로 일본서기를 편집하면서 일본역사에 껴 맞춰 우리 역사를 서술했다. 일제 강점기에 교육받고, 일본에서 유학한 학자들이 이런 역사를 전수받았다.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이병도 박사를 비롯한 신석호, 이기백 등의 사학계 주류라는 사람들이 역사 전체를 그렇게 다 만들어 버렸다. 이 학설이 제자들에게 전수돼 내려오면서 도그마가 되어서 자신들의 스승을 비판할 수 없는 헤게모니로 작용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식민사관을 탈피한 역사학자를 길러야 하는데 좋은 방법은?

    해방된지 80년 돼 가지만 아직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에 뜻있는 학자들도 “해방되고 나서 잘못된 역사들은 당신네들이 청산한 줄 알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반성하고 성찰해야 되는 문제라 생각한다.

    식민사관 학자들은 일제강점기 이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부정하고 일본서기로 우리 역사의 근거를 시작한다. 이병도 박사는 1963년도에 ‘수로왕릉고’를 저술하면서 수로왕은 가야 최초의 왕이 아니고, 가야의 ‘중시조’라고 주장했다. 이런 시각으로 가야를 바라보니까 역사에서 가야가 지워진 것이다.

    부산대 국문학과 이병성 명예교수는 ‘임나’를 ‘대마도’라고 입증하는 다양한 저서와 논문들을 내고, 일본 국회에도 전달했다. 당대에는 이 분의 학설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이 분이 연세가 많이 드시고, 정통 사학자도 아니고 하다보니 그 이후, 또 관학자들의 맥을 이은 사람, 일본 유학파 등으로부터 김해가 임나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식민사관에 바탕을 둔 역사는 확실한 근거와 유적을 통해 사라질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시점이 오고 있고 역사의 거대한 조류에 의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교수들도 바뀌지 않으면 여러 지원이나 장애에 부디치게 되어 있다. 여론화가 될 것이다.

    - 가야문화진흥학술대회가 9회째 접어들었다. 그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을 텐데, 식민사관 임나일본부설 주장 학자들, 그 주장의 맹점에 많은 깨달음과 변화가 있었는지?

    삼국사기, 삼국유사, 김유신 열전에도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김해시사(史)에는 수로왕과 허왕후를 신화화하고, 서기42년 건국이 불명확하다 하고, 가야불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하는 부정적 내용들과 수로왕과 허왕후를 낙랑군 상인의 염문서라고 폄하한 내용들을 모두 삭제했다. 20여 억원의 예산을 들여서 나라 팔아먹는 행위를 한다.

    현재도 ‘임나’가 삭제되지 않은 상태로 오는 6월에 발간한다고 하는데 위험천만한 일이다. 전라도 1000년사, 부산시사(史)도 임나문제로 발간 못하고 있는데 이영식 교수나 김태식 교수는 김해를 임나라고 한다. 시사(市史)편찬위원회에 여러번 위험하다고 예고를 했다. 임나가 김해라는 확실한 문헌도 없다.

    - 가야사 왜곡의 첫 단추는 허황옥의 도래에 대한 실체 규명이라고 말씀 하셨다. 공사 진척으로 보면 공정 몇 %라고 볼 수 있는지 

    고대사는 문헌과 유물이 있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관점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야사와 민담·설화·전설과 개인의 일기 등을 종합적으로 봐서 공통된 것만 정사로 남겨야 한다. 가야사 전체는 미발굴된 것이 많고 학계에서는 가야 유적 발굴이 20%도 채 안 된 걸로 추정하고 있다. 유물들이 현재 살고 있는 주택가에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살기 좋은 데는 계속 산다. 20%도 채 안 된 걸로 있다 없다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록에도 있고 구전 설화에도 다 나와있는데, 또, 가락국기에 명시된 지명들이 지금과 대조해 보면, 위치나 거리 등이 정확하다.

    외성 1,500리 규모는 거의 맞지 않은가. 학자들이 그 기록이나 가락국기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류사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일본서기를 연구하다 보니 가락국기를 연구하지 않았다.

    - 우리나라 최초 불교가 고구려를 통한 대승불교가 아닌 ‘해동초전불교’가 가야불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 역사교과서는 수정되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 그런데도 아직 수정되지 않고 있어 다각도로 노력중이다. ‘임나’의 지명이 우리나라 역사에는 단 세 번 나오지만, 일본서기에는 책 한 권에 215번 나온다. 815년에 편찬된 '신찬성씨록'이라고 하는 일본 고관대작들의 성을 파악한 데 보면 거기에도 임나가 12번 정도 나온다.

    그래서 임나라고 하는 지명은 일본 열도에 있다는 거다. 우리의 삼국사기, 삼국유서에 분명히 가야불교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재정립해야 된다.

    일제는 1919년 3·1일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나서 강압적으로 해서는 안 되겠다고 한 뒤 문화정책으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교육 체제 전체를 바꿔버린다. 그래서 심상소학 역사보충교재라고 하는 그 시스템을 만들어서 교사들한테 지침을 내렸다.

    거기에 광개토대왕, 삼국사기, 진경대사탑비 이 3곳의 임나 기록을 가지고 “임나를 이 땅에 고정시켜라”이렇게 교육지침을 내리게 한다. 가야불교가 우리나라 최초 불교 도래라는 것으로 역사가 바뀌어야 한다.

    - ‘가야불교 빚장을 열다’출판하였고, ‘허황옥 3일, 잃어버닌 2천년의 기억’다큐멘터리 영화 상영 등 많은 실적과 연구가 있으셨다. 소회 한 말씀?

    책을 출간한 뒤, 인도대사로부터 면담 요청이 왔다. 가서 들어보니 이 책이 좋으니 영문으로 번역되면 좋겠다고 해서 작년 인도대사관에서 영문출판 기념회 개최햇다. 반응이 좋아 힌디어로 또 번역 중에 있다. 최근 인도 외교부장관도 접견 요청을 해와, 제가 한국 인도 교류 2000년 기념 사업을 제안하니 즉각 동의를 했다. 이와 같은 표면적 성과들이 있었다.

    - 가야문화진흥원과 (사)코리아 타밀상감이 합동 학술대회 개최 등에 대한 MOU를 체결했다. 우리나라와 인도 양국의 동시 연구 확대가 기대된다.

    가야문화진흥원과 (사)코리아 타밀상감이 공동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MOU를 체결하고, 내년에는 범어사에서 국제학술대회로 폭을 넓혀 개최한다. 동국대를 중심으로 시작하여 가야사의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어 왔다. 작년부터는 언어와 복식 등 가야문화를 비롯하여 가야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함께하려 한다. 이것이 가야의 정신이고 통합정신이기도 하다.

    - 스님께서 말씀하신 명상을 통한 깨달음, 복지를 통한 자비 나눔, 가야불교 바로 세우기를 통한 우리 역사 세우기를 계획대로 잘 실천하시는 것 같다. 가야문화진흥원은 가야불교 문화 선양은 물론, 복지,교육,장학사업도 하신다고 알고 있다. 간단한 소개를 하신다면?

    2년 전에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3가지 목표를 실천하려 했다. 명상을 통하여 깨달음의 확산, 부처님의 자비 나눔, 역사 바로 세우기였다. 가야문화진흥원 산하에 가야국제명상센터의 바라밀 선원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천을 활발하고 있고, 가을에 명상 문화 축제도 개최할 예정이다. 잘 되고 있다.

    복지사업은 소소하게 실천하는 것을 비롯하여 장학사업을 각 사찰에서 시행 중에 있고, 가야문화진흥원 산하에 ‘이웃을 생각하는 모임’을 운영하며 매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로는 호국불교이다. 국가가 있고 자유가 있어야 종교 도 있다. 역사는 우리 민족의 근원이고 정체성이고 혼이고 정신이다.

    즉, 국가 존재의 근간이다. 중국과 일본은 이것을 흔들어야 우리나라를 흔들 수 있다는 기조 하에 또 그런 전략과 전술 하에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반도사관이나 식민사관의 잔재를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썩은 찌꺼기가 있는 접시에 진수성찬을 담아봐야 먹을 수 없다.

    - 혼란스러운 사회를 치료하는 약방문은 ‘인문학의 또 다른 정점인 역사를 통해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시민들에게 역사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강조하신다면?

    역사는 뿌리이고 정신이다. 역사에서 인과(因果)를 배울 수 있다. 의롭게 살다 보면 당대에서는 곤란과 핍박을 받더라도 역사에서는 길이길이 기려지고 후손들도 자긍심이 생긴다. 선진국은 국가영웅을 잘 만든다. 역사를 바로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고 역사교육을 바르게 하면 통합적 교육이 된다.

    그래서 역사를 잘 발굴해서 후손들에게 잘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것을 모르고 세계화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친구와 적의 구분이 없다. 우리 스스로 힘을 가져야 한다. 힘을 가지려면 역사를 잘 알고, 정신세계가 통합되어야 한다. 우리의 정신세계에는 이미 세계화가 돼 있다. 전 세계에 모든 철학과 종교에도 없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濟世理化) 정신이 우리의 진정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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